일석오조-꽃, 약초, 나물, 요리, 스토리가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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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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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산나물 들나물"

오현식 지음 ㅣ 농민신문사


 "아무렴 밥상에 제철 나물 한 가지는 올라와야 하는 거 아닌가?"

맞벌이로 서로 피곤했던 언젠가 가족들과 아내가 차린 밥을 먹으면서 겁도 없이 저 말 한 마디 툭 던졌다가 매우(라고 쓰고 '디지게'라 읽는다)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다듬고, 데치거나 삶아서, 갖은 양념에 버무리는 나물 한 가지의 수고가 계란 후라이마냥 간단치가 않커늘 "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오면 내가 집에서 살림만 하면서 제철 아니라 사철 나물도 해서 바친다"는 결론에 이를 때까지 깨져야 했다. 


밥상의 나물 이야기를 하니 벌써 손가락으로 죽죽 찢은 가지 나물에 참기름, 고추장 팍팍 넣 어 비빈 밥 생각에 군침이 확 돈다. 이 대목에서 '오늘 저녁 퇴근 길에 가지 사가야지 마음 먹은 독자가 열에 세 명은 넘는다'에 '오백 원' 걸겠다. 어디 가지 나물 뿐이겠는가. 고들빼기, 달래, 냉이, 씀바귀, 더덕, 미나리에서 수리취까지 우리 산야(山野)에서 나고 자라는 식물 중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60~70종에 이른다. 


농민신문사 기자 김현식은 이 중 인위적으로 재배 되고 있는 50종을 엄선해 생태, 생김새, 효능, 요리법은 물론 각각의 식물에 얽힌 역사, 속설 등 스토리까지 더해 읽을 맛은 물론 먹을 맛 나는 <약이 되는 산나물 들나물>로 엮었다. 들나물 18종, 산나물 25종, 나무나물 7종이다. 이중에는 민들레나 쇠비름 같이 실제 한약재로 쓰이는 나물들도 많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 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라는 동요 때문에 우리는 나물은 흔히 봄에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냉이와 씀바귀 등은 가을에 새싹을 틔우고 한겨울에 잠시 움츠릴 뿐 얼음 녹은 물에 묵을 축이고 일찍이 새싹을 밀어 올린다. 계절 구분 없이 먹을 수 있는 자연 나물이 많은데 더구나 현대 농업은 비닐하우스 때문에 채소들의 제철을 아예 없애버렸다. 


옛 선현들께서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 보약, 가장 좋은 보약은 제 철 나물’이라는 명쾌한 말씀으로 건강장수의 비결을 일러주셨다. 이게 빈 말이 아니다. ‘암을 이긴 의사’로 유명한 홍영재 박사가 지독한 ‘가지 나물 편식'을 대장암과 신장암을 극복한 비법으로 밝힌 신문기사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주르륵 뜬다. 홍 박사는 가지가 ‘일등 항암식품’인 과학적 근거로 보라색에 들어 있는 파이토케미컬이라는 식물 활성 영양소를 들었다. 홍 박사 때문에 가족의 건강을 위해 특별히 ‘가지’를 비롯 빨, 노, 초, 보라색의 나물거리를 찾는 주부들이 늘었다고 한다. (초장에 가지 나물 비빔밥을 괜히 꺼낸 게 아님을 눈치 빠른 독자들은 벌써 알아챘을 것이다.) 


해외교포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전통음식은 무엇일까? 아마도 배추김치나 깍두기, 불고기, 라면이나 자장면(이 전통식품은 아니지만)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천만에, 뜬금없는 고들빼기김치다. 아마도 겨우내 항아리 속에서 제대로 곰삭은 고들빼기김치의 깊고 진한 자극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고들빼기김치는 얼음이 꽁꽁 얼고 함박눈이 내리는 한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다. 


숙취 등 몸 속 피로물질의 해독에 ‘근성 있는 미나리’가 최고라는 사실은 여러 실험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황풍년 지음)에서도 농촌의 늙은 할머니께서 "서리도 맞고, 눈도 맞은시롬, 얼었다 녹았다 추위를 전딘 미나리라야 단맛이 깊고 술독도 잘 풀어낸당게"라 하셨다. 그런데 왜 미나리에게 근성이 있다고 할까? 그건 한겨울 칼바람과 얼음장을 견디기 때문이다. 선인들은 그런 미나리의 4덕()을 칭송했다. 진흙탕에서도 때묻지 않고 자라나는 심지(心志), 응달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 가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강인함, 얼음 섞인 칼바람과 대결하는 결기(決起)이다. 자고로 살면서 미나리 4덕을 갖추기만 한다면야 이루지 못할 일이 있겠는가! 


기자인 저자가 직접 근접촬영한 나물 사진들과 함께 주된 요리법, 영양분, 효능, 계절과 주산지, 재배법과 특성, 스토리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보고, 읽기 편한 나물 도감 플러스 나물 요리’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부록으로 ‘전국의 가볼 만한 산나물 축제’와 ‘나물, 씨앗, 모종 판매하는 곳’이 붙었다. 


더구나 요즘에 '화초'를 애써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 봄에 빼꼼히 피는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도 이름을 알고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은 감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강에 가서도 동강할미꽃을 알아보면 더 폼이 난다. 카메라 들고 야생화 찾아 산야를 헤매다 겨우 발견한 며느리밥풀꽃 한 그루는 또 얼마나 반가운 것이던가. 그래서 일찍이 유홍준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 1권 서두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이전과 다르리라'고 했던 것이다.  


혹시라도 지인들과 여름철 산기슭을 걷다 저만치 고고하게 자태를 빛내는 원추리꽃을 보고 "어머, 저 꽃이 바로 원추리야. 너희들은 그냥 꽃으로 알겠지만 미국과 일본에서 연구를 해보니 원추리 꽃잎과 줄기에 강한 항산화, 항암성분이 들어있대. 그래서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해주는 풀이라는 뜻의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린단다"라고 말을 한다면 게임은 거기서 끝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