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 관람기] 어이쿠, 이런걸로 놀라기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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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20 17:16


1.
트럼프는 아무데나 싸인을 하는 버릇이 있는거 같다. 출처=청와대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그냥저냥 145석 정도를 얻길 바랬다. 그래야 20대까지 했던 것처럼 이도저도 못하고 심한 욕도 안먹었을텐데... 선거 전날 시뮬레이션 했는데 180석 가까이 나오는 것 보고 사실 마음 매우 심란했음을 고백한다.

민주당이 180석을 가져가면 곤란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 당은 전통적으로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다. 의제설정 능력도 떨어지고 리더십도 부족하다. 당사 밑에 수맥이라도 지나는지 원내에서 이렇다할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은 정말 희귀하다. 이해찬 옹이 있지만 그의 능력은 선거에서 지지 않는 분야에만 특화되어 있다. 게다가 많이 아파 보이는 걸 보니 더 뭔가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이런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과단성 있게 뭔가 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깽판도 쳐 본놈이 치는거고, 막나가는 것도 해본 놈이 하는건데 민주당은 그런 경험이 없다. 클럽 처음 가본 머스마처럼 엄청 두리번 두리번거릴것 같다. 한국 정치 연대표에서 미래통합당 류의 종말을 상당히 앞당긴 것 정도가 솔직히 반길만한 일이다. 젊고 유능한 초선들이 많이 당선됐으니, 회기가 끝났을 때 그중에 반타작 정도는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기대를 가져본다.

역사적으로 내부 리딩을 못했으면서도 흥했던 자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외부에 공동의 적을 만드는 걸 잘했다는 것이다. 같은 결에서 민주당이 당장 집중해야 할 일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고 생각한다. 검찰개혁은 공수처를 가동시키는 것이고, 언론개혁은 의도적인 가짜뉴스 처벌하는 법안 만드는 일을 말한다. 일하는 속도가 느려서 그거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 임기 지나갈듯 하다. 당장 뭐해야할지 모르겠으면 여론조사를 자주 했으면 좋겠다. 제발 시험 못치는 애들처럼 수학시험 앞두고 사회공부하고, 한문시험 앞두고 수학공부하지 말길 바란다.

2.
21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갑 낙선자 김부겸. 출처=중앙일보
김부겸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지역구도 타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필 대구를 골라서 그 땅땅한 돌덩이에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김부겸을 좋아한다. 그러나 솔직히 주변을 둘러보면 김부겸에게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노사모 세대부터다. 그 아래 세대는 이른바 '정덕' 수준에 도달한 이들이 아니면 그냥 김부겸을 '모른다'.

요즘의 감성은 노무현 시대와 다르다. 동서를 가르는 지역주의 자체도 과거보다는 많이 누그러졌고, 뭣보다 가치 못지않게 능력을 보는 시대다. 앞으로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티안나는 행안부 장관 맡아서 고생만 했던 김부겸은 불운하다. 선거에서 낙선했으니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줄 것이다. 거기서는 이낙연 만큼 잘 해야 한다.

김부겸이 낙선하고 나서 '농부는 밭을 탓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다들 알다시피 노무현이 했던 말이다. 활자로 보면 말 자체가 멋지지만, 노무현이 그 말을 할때 상당히 억울한 심경을 함께 내비쳤다는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김부겸은 같은 말을 매우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멋있을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그가 '지역주의 타파'라는 역할에 심취해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아쉽게도 그걸로 대통령 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 진정 그를 아끼는 유권자들이라면 자꾸 그에게서 노무현을 찾으려 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3. 미래통합당은 너무 잘하고 있는 거 같다. 황교안이 멘탈 터진 표정으로 개표를 미처 다 보지도 못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참 아쉬웠는데, 요행히 당선된 역전의 용사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표차가 적은 지역 재검표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보수 진영의 가장 큰 문제는 당내외 대소사와 메시지 관리를 해줄 똘똘한 '지배인'이 없다는 것이다. 낄데 빠질데, 앉을 데 설 데 구분하고 그때그때 공략 포인트 짚어주는 콘트롤 타워가 없으면 180석 규모 민주당과의 국회 주도권 전쟁은 해보나마나다. 결국 정당 본진이 불타오르겠지.

강건너 불구경은 국민에게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홍준표와 안철수가 범보수의 차기 대권주자로 새롭게 매김하며 귀환하겠지만 둘 다 이런 건 잘 못한다. 김종인이 장기 체류한다면 약간 구도가 달라질테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난 대선과 큰 차이가 없어뵈는 홍준표와는 달리,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 구태력에 상당한 업그레이드가 있었던 것 같다. 나름 기획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많은 분들이 안철수 무시하던데 그가 지난해 선거법 개정일에 맞춰서 마라톤 뛴 것이나, 이번 선거에서 며칠동안 달리기 한 것은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진화한 것이다. 국민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를 안내서 공직선거법상 할 수 있는 마땅한 선거운동이 달리기밖에 없었다. 효율로 보면 최소의 노력으로 3석 획득한 국민의당이 이번 선거의 가성비 갑이다.

4.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번 선거 출구조사와 특집방송에 70억 넘게 썼다던데 속도 경쟁에서 유튜브 개인방송에 처참하게 졌다. 지상파들이 안일하게 선관위 자료 받아다 CG떡질에 아무말 대잔치 하고있을때 똘똘한 유튜버들은 실시간으로 개표장 연결해서 실황 보도를 했다. 현장에서는 개표가 이미 끝나서 당선자가 가려졌는데 TV에서는 접전지 후보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 우스운 광경들도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다.

이거 기자들 보내서 하면 되는거거든...
5. 태구민 혐오 논란이 있더라. 이것도 잘 알려져있지 않은 오피셜인데, 태구민 인터뷰 하려면 2시간에 100만원 내야한다. 그는 거액의 돈을 받고 언론 인터뷰를 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나는 그의 말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 편이고, 그 태도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그가 하는 말이 통장 입금액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거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미디어오늘 기사. 제곧내라 링크 안걸었다
괜히 력삼동 내래미안 같은 드립치다가 혐오소리 듣지 말고, 근거로 비판하면 된다. 영국 언론이 인용보도한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도 있고 횡령 의혹도 있다. 사인이었을 때는 별 관심 없었지만 국회의원이 된 이상 국민의 자격으로 하나하나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해명을 요구할 수 있다.

5.
16일 정의당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울고있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출처=경향신문
진보진영 내에서 '심푸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결국 눈물을 쏟았다. 그는 "정의당의 길을 함께 개척해온 후보들을 더 많이 당선시키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울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러게 비례 순번 좀 잘 짜지... 그런데 알고보니 미괄식 메시징이었다. 그는 이어 "정의당은 10%의 육박하는 지지율에도 여전히 300석 중 2%의 목소리만을 가지게 됐다. 몹시 아쉬운 결과"라고 자평했다.

심푸틴님 뿐만 아니라 여러 유권자들이 정의당 비례 10% 득표의 의미에 대해 오해하고 계신것 같다.법적으로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는 별개다. 그래서 1인 2표를 주는 것이다. 비례대표 선거는 300석이 아니라 47석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선거라는 얘기다. 10%면 4.7이니 반올림해서 5석. 그래서 정의당이 얻은 비례의석수가 5석인것이다.

현행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따로 조사한다. 비례대표 득표가 정당 지지율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의당의 지지율은 10%가 아니라 5% 남짓이다. 상황이 이런데 10% 득표했으니 우리 30석은 받아야하는데 지역구 포함 꼴랑 2%만 가져왔어요 드립치는 것은 정말 양심이고 뭐고 없는 것이다.

만약 전국민 1인 1표만 줬을때도 10%가 정의당 찍었다면 그건 당 지지율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전국민 1표씩 주고 지역구 없이 완전 비례로 국회의원 뽑으면 정의당이 몇 명 뽑힐까? 비례 1번 대리게이머 넘을 수 있을까. 정의당은 이상한 포인트에서 울지말고 부디 의정활동 잘 하길 빈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선방한 선거인데 본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불고기 먹을때는 몰랐게찌...

사실 나는 정의당 좋아한다. 그동안 표도 적잖게 줬다. 비판도 애정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앞으로는 디테일한 비판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슬픈 예감도 든다. 이번 의원 라인업은 도무지 관심이 안 간다. 아무튼 대리1번 의원님을 포함한 모두의 건투를 빈다.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것이니.
   
내이름은방량 04/24 07:49
선구독 후추천 했습니다. 선거관련 날카로운 분석 감사합니다
2 댓글
김느낌 04/27 21:29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