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9월 19일 ‘최초’의 이모티콘? 그 전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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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4 11:01

1982년 9월 19일 ‘최초’의 이모티콘? 그 전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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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 19일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스콧 팰만 교수는 격식 같은 것 따지지 않고 학생들과 토론을 즐기는 개방적인 교수였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 토론할 때는 서로의 감정과 뉘앙스를 고려하게 되고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싶으면 실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었는데 당시 초보적일 걸음마를 시작하던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그게 어려웠다. 누군가 올린 글이 농담삼아 한 얘긴지 진지하게 각 잡은 제안인지 구분이 안갔던 것이다. 여기서 팰만교 교수는 이런 제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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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합시다. 농담조로 올리는 글에는 이런 기호를 달아요.  :-)  세워서 읽어 봐요. 그리고 진지하게 올리는 글 뒤에는 이렇게 달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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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으로는 이렇다. “I propose that the following character sequence for joke markers:   :-) Read it sideways. Actually, it is probably more economical to mark things that are NOT jokes, given current trends. For this, use   :-( .”







이 원문(?)이 정화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무려 20년 뒤 당연히 지워진 줄 알았던 전자 게시판을 되살려 냈기 때문이다. 이 새롭고도 기발한 표현방식은 당시의 온라인 사용자들에게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PC통신과 인터넷이 일반화되는 1990년대 이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재생산되고 유포되면서 오늘날 ‘이모티콘의 세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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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동기들 카톡방에서 누군가 아무개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올리면 도무지 어디서 퍼왔는지 가져왔는지 모를 ‘축하’ 이모티콘들이 형형색색으로 터져 나온다. 그 중엔 정말 재미있는 것도 있어서 너 그거 어디서 구매했냐고 묻기도 할 정도로. 이모티콘을 쓰지 않고 ‘생일 축하해’라고 올리는 넘이 면구스러워서 한 마디 할 지경이다. “이모티콘이 없어서 미안해.”이모티콘 없이 건조하게(?) 문자로만 축하한다고 올리는 것이 스스로 서운할(?) 분위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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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언젠가 열심히 뭔가를 그리기에 뭘 하나 봤더니 포털 사이트의 이모티콘 모집에 응모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어느 극성맞은 왕비 캐릭터가 “뭬야?” “당장 끌어내거라”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네 놈이 죽고 싶은 게로구나” “너 보니 밥맛이 없다.” 등등의 표현을 하는 이모티콘이었는데 꽤 재미있었느데 당선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표정 하나 하나에 공을 들이고 손짓 하나 옷고름 하나에 섬세하게 색칠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러니까 이모티콘이 인기가 있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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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모티콘의 출발점은 팰만 교수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최초의 이모티콘은 아니라고 봐야 맞겠다. 팰만 교수가 전자 게시판에 이모티콘 제안을 하기 100년 전,1881년 3월 30일 미국의 풍자 잡지 퍽(Puck)에서 처음으로 모스 부호를 이용한 이모티콘이 소개됐다고 영국의 데일리매일지가 보도한 바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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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모티콘들은 '가장 오래된 이모티콘'으로 알려져 있는데, 얼굴 이목구비 모양을 이용해 기쁨, 슬픔, 무관심, 놀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팰만 교수가 제안한 이후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온 이모티콘들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 단지 널리 쓰이지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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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기호나 축약된 문자, 아니면 이미지로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는 이모티콘 전에도 있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었다. 차제에 우리가 쓰는 의문 부호 ‘?’ ’!‘ 역시 출발은 이모티콘적인 성격이었으리라.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에게 “?”라고 편지를 써서 책 잘 나가오? 라는 뜻을 전달하고 출판사가 “!”라고 답을 보내 “대박입니다.”라는 뜻을 전달했다는 일화를 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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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도 이모티콘과 비슷한 축약과 여운을 즐기기도 했다. 전북대학교 박물관에는 1881년 10월 9일 순천부사가 순천부 월등면에 사는 장만열이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문안 편지가 보관돼 있다. 그런데 이 문안 편지에는 기체후일향만강하옵시며 가내 제절이 두루 무고하신지.....로 시작하는 조선 선비들의 격식 따위는 깡그리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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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한 날짜와 발신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도장. 그리고 딱 두 글자였다. ‘존문(存問)’ 즉 문안 여쭙소 하는 짤막한 단어였다. 아울러 이 말에는 고을 수령이 고을 사정을 알아보고자 고을 유지들을 방문한다는 뜻도 있으니 “조만간 들를까 합니다.”의 뜻도 되는 것이다. (“알아서 기시오.”라는 뜻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즉 그 시대의 이모티콘이었다고나 할까. 구구절절 사연보다 저 두 글자에 모든 뜻을 품어 버리는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http://www.jbpresscen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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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상의 이모티콘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모티콘적인 언어를 구사해 왔다. <응답하라 1988> 보면서 뭔가 좋은 일을 발견하거나 누구를 칭찬하고 싶을 때 ‘캡!’ 소리 지르는 혜리 모습에 미소를 지은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안좋은 일이나 미팅 가서 폭탄을 만났거나 할 때 그에 대응하는 감탄사 (이모티콘)는 ‘황!’이었다. “야 미팅 어땠냐.” “어우 황이야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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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는 그런 유행도 있었다. 당시 유행어들의 글자 수에 맞춰 번호(?)를 지정하고 상황에 맞게 부르짖는 것이다. 이를테면 1번은 ‘욱~’ (구역질하는 소리)였다. 그만큼 불쾌하고 정나미 떨어진다는 뜻이다. 누군가 나이키 신고 왔다고 자랑하면 그 뒤통수에 대고 “1번이다 자슥아.” 하고 쏘아대는 식이다. 4번은 ‘웬일이니’였다. 누군가 근사한 짜장면을 사거나 팥빙수를 내면 눈이 휘둥그래져서 ‘와 4번이다 4번.“을 연발하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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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선생님한테 단체 기합을 받고 ‘매 타작’을 받고 들어온 며칠 뒤 체육 시간이 돌아왔는데 그날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실내수업을 진행하러 선생님이 들어왔는데 칠판에 ‘최00 선생님 10번’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이 이거 뭐냐고 물었고 한 놈이 ”샘을 열 번 생각하면서 잘하자는 뜻입니더.“ 하자 선생님은 피식 웃으며 넘어갔지만 얌전히 앉아 있던 우리 반 아이들은 데굴데굴 속으로 구르고 있었다. ‘10번’ 에 해당하는 뜻은 이것이었던 것이다. ”죽을 때까지 설사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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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이나 의사를 간단하게 전달하는 방식은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궁리돼 왔거니와 팰만 교수가 그 문호를 개방(?)한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온 이모티콘의 홍수는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고 하루에도 기발하고 재미있고 감성 충만한 이모티콘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래도 아무리 멋진 이모티콘이라고 해도 직접 만나서 그 감정을 실어 전달함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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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팰만 교수가 최초의 이모티콘을 제안한 것 역시 ‘보완재’의 목적이었지 대체제가 아니었으니까. 휘황한 이모티콘도 좋지만 “어 생일이냐. 담주에 시간 되냐. 내가 냉면이나 하나 살게. 애들 두 서넛 모아 봐”라는 톡이 더 즐겁고 그렇게 만나서 우의를 다지는 게 삶에 더 영양분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