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 인간 사이에서 - 19세기의 사신 콜레라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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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4 15:26

꽤 오래 전부터 광범위한 지역에 퍼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류가 그 존재를 알고 있었던 병이 있는 반면, 특정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던 풍토병이 어떤 계기로 다른 곳에 전파되고 나아가 전 세계를 덮치는 공포의 사신(死神)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다. 콜레라는 그 대표적인 예다. B.C. 500년 경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인도의 문헌에는 ‘몸의 수분을 몰아내 사람을 말려 죽이는 병’이 등장한다. 이 짤막한 기록으로 문헌상의 병이 콜레라인지 확언할 수는 없겠으나 ‘몸의 수분을 몰아낸다’는 표은 콜레라를 연상시킨다. 온몸의 수분을 쥐어짜듯이 쏟아내는 것은 콜레라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콜레라는 오랫동안 갠지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인도 지역의 풍토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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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인도 지역에서 맹위를 떨치던 콜레라는 매우 생소하고도 싱싱한(?) 숙주와 조우하게 된다. 한 번도 콜레라를 경험하지 못한, 수천 킬로미터 바깥의 인간들이 별안간 무더기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아 아프리카를 끼고 남하하다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 땅 캘리컷에 발을 디디게 된다. 1498년 5월의 일이었다. 포르투갈은 이슬람 세력과 인도 토후의 저항을 격파하고 고아 등 인도 서부의 주요 거점을 장악한다. 그러나 압도적 무력을 바탕으로 인도의 거점을 확보한 포르투갈 군대는 인도 토후의 군대보다 몇 배 더 무서운 괴질의 습격을 받았다. 포르투갈의 역사가 가스파 코레이야에 따르면 “독보다 더 나쁜” 병 때문에 “일일이 매장하기 불가능할 만큼” 많은 숫자의 포트투갈 군이 쓰러졌다고 한다. 그 증상과 예후를 보면 바로 그 병이 콜레라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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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오랜 동안 인도 지역에 머물던 콜레라는 19세기 초반 드디어 육중하고 독랄한 몸을 일으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한다. 1817년 인도에서 콜레라 대유행이 발생한다. 전파 속도는 전례 없이 빨랐다. “발병 원인은 이상 기후 (1815년 4월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대폭발로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가 발생했다)로 인한 흉작과 그로 인해 영양분 섭취량이 턱없이 부족해 면역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트 게르슈테 저, 미래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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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보라 화산 폭발은 인류가 기록한 가장 강력한 폭발 중의 하나로 엄청난 양으로 배출된 이산화황이 성층권까지 올라가 태양열을 가로막으면서 1816년과 1817년은 전 세계적으로 “여름이 없는 해”로 기록됐고 이는 고스란히 농작물 피해와 기아로 이어졌다. 쇠약해진 사람들을 공격하며 인도 대륙을 벗어난 콜레라는 영국 배들에 붙어 항해한 끝에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일본, 조선까지 휩쓸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설사를 쏟아내고 몸 안의 물기를 몽땅 뿜어낸 다음 1주일도 못가 숨을 거두는 이 듣도 보도 못한 괴질은 세상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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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에서는 역병 귀신을 쫓는 여제(厲祭)를 베풀었다. 여제는 역병이라는 재앙에 국가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정치적 치장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억울한 원혼 따위가 뭉쳐져 원(寃)기역에 파견했다. 유행규모에 따라 중앙에서 파견된 제관의 등급이 달랐으며, 많은 겨우 그 지방의 수령이 직접 제사를 거행했다. 또한 유행이 매우 심할 때에는 왕이 직접 제문을 짓기도 했다.”(<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역사비평사, 신동원 저) 병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은 조선만이 아니었다. 온 세계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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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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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동쪽 원정(?)을 끝낸 콜레라는 1826년 경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중앙아시아를 휩쓴 콜레라는 1830년 러시아에 상륙했고 삽시간에 수만 명을 죽인다. 러시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군대를 동원한 차단과 지역 봉쇄 뿐이었다. 심지어 상인들의 이동도 통제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갔고 굶어 죽으나 병에 걸려 죽으나 군인들에게 맞아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1831년 6월 ‘콜레라 폭도’들이 수도 페테르스부르크에 몰려와 콜레라 병원을 습격하며 의사들을 죽였다. ‘유럽의 헌병’으로 불릴 만큼 철저한 보수파였던 짜르 니콜라이 1세는 정부군을 동원해서 폭도를 진압했는데 폴란드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여지없이 폴란드에도 군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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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폴란드로 간 러시아군은 총과 칼 외에 콜레라라는 살인 무기를 자신들도 모르게 장착하고 있었다. 폴란드 사람들도 여지없이 콜레라의 제물이 됐고 인근의 독일, 헝가리 등에도 퍼져 나가 발트 해에 이르렀다. 콜레라는 발트해를 분주히 오가던 배에 실려 영국으로 건너 갔고 영국과 아일랜드를 거쳐 신대륙에까지 그 마수를 뻗친다. 가히 ‘콜레라 판데믹’의 판도가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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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다. 심한 탈수로 인해 단 몇 시간만에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해지고, 모세혈관도 파열되어 피부도 검푸른 색으로 변하면서 죽어 갔다. 건강했던 사람이 단 하루 만에 죽어가는 모습은 눈 앞에서 본 사람들조차 믿기 어려울 만큼 괴기스러웠다. 처음 접하는 콜레라의 습격 앞에서는 빈부와 귀천과 인종과 민족의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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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서는 순례자의 반이 넘는 1만 2천여명이 쓰러져 죽어갔다. 헝가리에서는 1831년에만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같은 해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총 인구의 13% 이상이 죽음을 당했다. 콜레라는 유명하고 부유한 인사들도 가리지 않았다. 독일 관념론 철학의 완성자 헤겔도, <전쟁론>의 저자인 클라우제비츠도 콜레라에 걸려 생을 마쳤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혁명, 즉 주인공 마리우스와 친구 앙졸라 등이 일으킨 무장 봉기의 배경이 바로 콜레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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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0만의 프랑스의 수도에서는 1832년 3월 하순부터 빈민가를 중심으로 콜레라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기 시작했고 곧 시체를 수습하지 못할 정도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때 번진 소문이 “정부가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것이었다. 상류계급을 대변하는 정부가 하층계급들을 몰살시키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주장은 물론 사실이 아니었으나 눈앞에 보이는 콜레라의 공포에 물든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다. 급기야 공화파 지도자로 대중적 인기가 높던 라마르크 장군이 그만 콜레라로 사망하고 말았다. 이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기화로 파리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공화파의 지휘부는 파리 중앙시장이 있던 레알 지구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정부군과 대치했다가 진압된다. 빅토르 위고가 묘사한 마리우스와 친구들의 ‘혁명’의 무대는 바로 이 사건이었다. 또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울려 퍼졌던 <Do you hear people sing?> 노래의 배경에는 콜레라가 내뿜는 음산한 독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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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버 해협 건너 영국에서도 콜레라는 맹위를 떨쳤고 멀쩡하던 사람들이 참혹한 모습으로 말라 죽어 갔다. 콜레라 유행이 영국에 상륙한 지 1년쯤 지났던 1832년 12월 런던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한 마을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농부 반즈는 여동생이 보낸 상자를 받았다. 상자 안에는 여동생이 옷이 들어 있었다. 여동생은 타지에서 콜레라로 죽었고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유족이라 할 반즈에게 그 유품이 보내진 것이었다. 여동생의 옷을 더듬으며 눈물을 흘리고 아깝게 먼저 간 여동생을 추모한 반즈에게 괴변이 생긴 것은 다음 날이었다. 심한 경련과 설사가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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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뒤 그는 죽었다. 반즈를 간호하던 반즈의 아내도 같은 증상을 보였다. 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기적적으로 반즈의 아내는 살아났지만 그 친정 식구 세 명은 모조리 죽고 말았다. 의사들은 물론 일반 사람들도 그들이 콜레라 때문에 죽었음을 알았다. 문제는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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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콜레라는 유기체가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쁜 공기, 즉 미아즈마(miasma)를 들이마시면서 발생한다고 생각됐다. 윌리엄 파(William Farr) 같은 사람은 콜레라가 공기를 통해 전염되며 템즈 강 유역에 엄청난 ‘미아즈마’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반즈의 마을 근처에는 별다른 ‘미아즈마’의 원천도 없었고 나쁜 공기를 내뿜을 콜레라 환자도 전혀 없었다. 도대체 반스 가족에게 병을 옮긴 것은 무엇인가. 이 의문에 주목한 수련의가 있었다. 이름은 존 스노우 (1813~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