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복서의 "나는 문제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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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4 11:10

그 복서의 <나는 문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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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그렇게 친한 편이 아닙니다. 소파에 파묻혀 눈을 감은 채 클래식의 향연에 젖는다거나 스피커 음질 따지며 수준 있게 귀 호사를 누린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오디오 관련 장비는 집에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블루투스를 사용하게 된 뒤로 옛날 노래들, 예전 좋아했던 영화음악들을 구글 드라이브에 차곡차곡 쌓아 두고 듣는 재미를 붙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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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코찔찔이 무렵에 나왔던 서울대 트리오의 <젊은 연인들>부터 나의 아저씨 주제곡 <어른>까지 이르는 세월 동안 나왔던 노래들이 들쑥날쑥 장르와 시대 불문 튀어나오다 보면 귀 속에서 작은 역사가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 중 한 노래가 20년 전 만났던 한 복서의 추억을 가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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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고갯길 주변의 각종 대형 음식점들 문전에는 머리를 굽히며 호객을 하는 분들이 나와 계십니다. 무심히 오가는 차건 출출해서 끼니를 기웃거리는 차건 가리지 않고 환영의 몸짓을 뿌리는 그들을 볼 때마다 제 뇌리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오버랩됩니다. 그 분 역시 남산 어귀의 식당 호객꾼 겸 주차 관리원이었지요. 거기에 그는 또 하나를 더 겸직하고 있었습니다. 프로권투 최경량급인 미니멈급 한국 랭킹 1위로 한국 챔피언 결정전을 앞둔 프로복서이기도 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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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 kg이라는 미니멈급 한계 체중을 맞추기 위해서 그는 막바지 체중 조절 중이었지요. 새벽과 아침 내내 깡마른 몸에서 땀 몇 방울을 더 빼내고 난 뒤 그는 남산의 식당으로 출근해서는 권투 글러브 대신 목장갑을 끼고 주차 관리에 나섰습니다. 세 끼 밥 챙겨 먹은 저에게도 아찔할 정도의 유혹이었던 돈가스 냄새 속에서 그는 꼴깍꼴깍 침만을 삼켜 가며 주차장을 정돈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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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닌 체육관 한 켠에는 왕년에 이 체육관을 거쳐 갔던 복서들이 받아 왔던 트로피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관 상태는 과히 좋지 않아서 거미줄이 치렁치렁 늘어진 가운데 뽀얀 먼지가 지층을 이루며 쌓였더군요. 세계 타이틀전이라면 방송 채널 모두가 총출동하고 동양 챔피언만 되어도 출중한 스타 대접을 받았던 호시절은 까마득한 과거로 날아가 버린지 오래, 오늘의 주인공이 낮에는 복서로 밤에는 주차 관리원으로 살아야 했던 이유도 가물에 콩 나듯 경기가 열리는 프로복서의 파이트머니로는 살아가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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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절치부심 준비한 미니멈급 한국 타이틀매치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열렸습니다. 굳이 그 도시가 선정된 이유는 경기의 주선자가 그곳에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왕년의 동양 챔피언이었다는 박아무개씨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중년의 나이로 은퇴 경기를 가지고자 했고, 그 지방에서 알아주는 '유력자'였던 그는 경기의 장식품으로 한국 타이틀 매치를 후원했던 겁니다. 제법 관중도 들었고, 왕년에 부산 지역에서 세계 타이틀 매치가 열리면 "청코너~~~~"를 부르짖던 늙은 링 아나운서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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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양 챔피언 박아무개씨의 은퇴 기념 경기가 박수갈채 속에 끝나자마자 관중들은 썰물같이 빠져 나갔습니다. 내가 박아무개 얼굴 보고 왔지 권투 보러 오지는 않았다는 듯 말입니다. 몇 달 동안 이 경기만을 위해 독을 품고 주먹을 갈았던 복서들은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격전을 자기들끼리 치러야 했습니다. 무슨 안경점 상호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가운을 입고 쉐도우 복싱에 여념이 없는 오늘의 주인공에게 감회를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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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안 씁니다. 제가 세계 챔피언 되면 다들 보러 오겠죠."
"세계 챔피언 돼도 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제가 뭘 해서 한국 최고가 될 것이며, 세계 최고가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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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지만 진지한 미니멈급 한국 타이틀매치가 시작되고 겨우 2라운드의 공이 울렸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차 관리원의 눈 아래가 상대의 머리에 받혀 심하게 찢겨진 거지요. 경기를 중단시킨 주심이 주차 관리원을 의사에게로 보이려 했을 때 그는 별안간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더 싸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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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살핀 의사가 고개를 저으면 경기는 당연히 중단되고 승패 자체가 불투명해질 분위기였습니다. 지역 유력자의 은퇴 기념 경기의 악세사리로 겨우 이뤄진 경기, 이 경기를 놓치면 다음 경기는 언제 어떻게 성사될지 모르는 상황....... 링 위의 복서들은 다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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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습니다. 싸울 수 있습니다. 선생님." 그는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의사에게 거듭 머리를 조아리면서, 링 중앙을 거듭 가리키면서 경기를 재개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로프 바깥에서 그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제가 흠칫 놀랐던 것은 그 몸짓이 매일 식당 앞을 무심히 지나던 차량들을 상대로 이리 들어와 달라고 손짓하던 호객꾼의 그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90도로 꺾이는 허리, 식당 문 쪽을 향하며 공손히 내뻗는 팔, 그리고 그 간절한 표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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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요란한 호객을 무시한 채 일상을 향해 달려갔던 수많은 자동차들처럼 의사의 진찰은 냉정했습니다. 결국 경기는 무승부로 처리되고 말았습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하지만 승자에게나 패자에게나 허망하기 짝이 없는 승부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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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이 마음 놓고 뭘 먹는 것을 본 건 경기 전날 계체량을 끝낸 밤이었습니다. 아니 밥다운 밥을 몇 술 뜨고 귤 몇 개 깐 게 다였으니 마음 놓고 먹었던 건 아니겠습니다. 그래도 체중 감량의 지옥을 무사 통과했다는 기쁨 때문인지 청년의 얼굴은 밝았습니다. 관장님이 긴장도 풀 겸 노래방을 가자고 하더군요. 청년도 기쁘게 따라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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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근처의 어느 지하 노래방에서 관장과 선수는 그야말로 흥겹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 선수가 고른 노래 중 하나가 황규영의 <나는 문제 없어>였습니다. “이 세상 위에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너무 힘들고 외로웠지 하지만 연습일 뿐야.... 넘어지지 않을 거야 나는 문제 없어......” 열창도 그런 열창이 없었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점수가 올라왔지만 그는 혼자서 반복했습니다. “넘어지지 않을 거야 나는 문제 없어.” 두 번 .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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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ex9EtlDk5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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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복서의 노래 이후 그 노래는 제 빈약한 애호곡 리스트의 한 귀퉁이를 확고하게 채우게 됐습니다. 별로 즐기지 않는 노래방에 어쩌다 끌려가 마이크를 강요받을 때 이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 복서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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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도, 역전의 깡패도,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의 말라깽이도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들기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길이 비록 험하고 멀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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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kg(미니멈급 한계체중)를 맞추기 위해 새벽길 30킬로미터를 달리던 말라깽이 청년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그의 희망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남해안 어딘가의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가난한 청년, 배운 것과 가진 것은 애초부터 없었고, '어깨'가 되기엔 덩치가 너무 작았으며 서울 바닥에서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처지였던 한 청년의 맥없는 눈 아래로 골짜기처럼 패었던 상처의 깊이를 저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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