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 인간 사이에서 - 인류의 무서운 동반자 천연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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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5 17:51

천연두는 오랜 역사에 걸쳐 구대륙, 즉 유라시아 대륙과 북부 아프리카 일대에 시나브로 퍼져 나갔다.  지역적인 편차도 커서 천연두의 대유행을 여러 번 경험한 곳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천연두의 위력을 제대로 겪지 않았던 행운의(?) 지역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10세기 이전까지의 북유럽, 즉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천연두를 몰랐다. 가깝게는 16세기 말부터 만주 지역의 강자로 부상하는 만주족들도 그 추운 날씨와 적은 인구 덕에 천연두를 만날 기회가 적었다. 중국인들은 이를 두고 ‘북로불출두(北虜不出痘)’ 즉 북쪽 오랑캐에게는 천연두가 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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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의 습격을 용케 피했던 것은 행운이었는지 모르나 기어코 천연두가 그 지역을 덮쳤을 때 그때까지의 행운은 몇 곱의 불행으로 뒤바뀌기 일쑤였다. 천연두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지역 사람들이 전혀 면역을 갖지 못했음을 의미했고 천연두가 들이닥쳤을 때 그 발톱 앞에 맨살을 드러내야 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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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루하치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누르하치의 지휘 아래 통일을 이룬 만주족들은 바야흐로 영광의 시대를 맞았다. 몽골을 아우르고 조선을 굴복시킨 뒤 본격적인 대륙 침공에 나서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 그렇듯 역사에도 호사다마(好事多魔)의 함정은 있는 법, 그렇게 사방으로 정복사업을 펼치던 만주족들은 생전 경험하지 못한 괴상한 병에 압도된다. 천연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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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홍타이치의 전쟁>(까치)의 저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구범진 교수의 설명이다. “아시아 동쪽 지역, 만리장성 이북의 초원지대 유목민 사회에서 천연두를 앓았다는 기록은 16세기가 돼서야 나타난다. 이후 18세기까지 천연두는 청나라 역사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등장한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조선 왕 인조의 항복을 받아낸 청 태종 홍타이치는 매우 다급하게 귀국길에 오르는데 이것도 청나라 군 진영에서 발생한 천연두를 피해서라고 본다. 청 태종실록에 ‘피두선귀(避痘先歸)’ 즉 천연두를 피해 먼저 돌아왔다는 기록이 등장하는 것이다.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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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는 이후 청나라의 중원 장악 이후로도 청나라의 역사 고비고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개국공신 중 공이 가장 크다고 표현되는 예친왕 도도를 비롯해 누르하치의 자손들 여럿이 천연두로 맥없이 죽어 버렸던 것이다. 청 태종의 뒤를 이은 3대 황제 순치제(順治帝)는 천연두가 유행한다 싶으면 황궁 안에 갇히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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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치제는 중국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그는 동악비(棟鄂妃)라는 후궁을 열렬히 사랑했다. 동악비는 외모도 뛰어났지만 궁궐의 하인들이 실수를 하면 대신 용서를 빌었을 정도로 따뜻한 여자였다. 동악비가 아들을 낳자 순치제는 엄연히 순번상 네 번째인 아들을 “짐의 첫 번째 아들”이라 부르며 황태자에 봉하겠다고 서둘렀으니 동악비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이 강보에 싸인 황태자가 곧 죽어버리면서 순치제와 동악비는 크나큰 슬픔에 빠진다. 몸도 맘도 쇠약해진 동악비를 엄습한 게 천연두였다. 동악비는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중국 드라마 속 순치제와 동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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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순치제가 보여준 행동은 노국공주를 잃은 뒤의 고려의 공민왕 이상이었다. 순치제는 4천자에 달하는 장문의 추도사를 본인이 직접 쓰고 읽고 5일간 통곡했으며 동악비를 위해 울지 않는 자는 죽이겠다는 무시무시하지만 어이없는 명령까지 내린다. 급기야 동악비의 죽음 4개월 뒤 동악비의 뒤를 따르듯 세상을 뜨는데 정사에 따르면 역시 그를 저승길로 데려간 것 역시 천연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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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치제는 독일 출신의 아담 샬, 탕약망(湯若望)이라는 중국 이름을 가졌고 조선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와도 친분이 있었던 선교사와 절친한 사이였다. 아담 샬의 집에 무시로 방문하는가 하면 언제든 황제를 만날 수 있는 특권도 주었고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토론도 하고 격의 없는 농담도 주고받는 그야말로 ‘특수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순치제는 아담 샬에게 자신이 살아난다면 기독교로 개종하겠노라고까지 이야기하지만 천연두를 이길 수는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순치제는 누구를 후사로 삼으면 좋을지 아담 샬에게 묻는다. 그때 아담 샬은 “셋째 현엽을 후사로 삼으십시오”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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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현엽이라면 총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천연두를 앓고 살아났기에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지니고 있었다. 만주족의 청나라가 만리장성을 넘어 대륙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남쪽에는 명나라 잔존 세력이 저항하고 있었고 숫적으로 상대가 안되는 만주족이 한족을 지배하려면 무엇보다 안정적인 리더쉽을 필요로 했다. 
“최소한 천연두로 죽을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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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치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순치제가 숨을 거둔 뒤 나이 일곱 살의 현엽은 대청제국의 황제로 등극한다. 그가 바로 중국인들이 ‘천고일제(千古一帝)’ 즉, 천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명군이라고 평가하는 강희제(康熙帝)다. 천연두를 앓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강희제는 무려 61년 동안 재위하며 청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




총명하기도 했지만 천연두를 앓은 덕에 황제가 된 중국 역사 최대의 명군 강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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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천연두가 역사와 정치에 개입(?)한 예는 수없이 많으나 천연두가 그 파괴적인 위력을 유감없이 휘두른 것은 신대륙에서였다. 남북아메리카에 걸쳐 살던 원주민들의 수는 수천만 명에 달했다. 멕시코 지역의 아즈텍이나 페루 일원의 잉카 등 대제국을 건설하여 높은 수준의 문명을 구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의 백인들에 의해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물론 철기(鐵器)를 알지 못했으며 화약과 기병 같은 것도 접해 보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사실상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쓰러뜨린 것은 천연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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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 코르테스는 300명 정도의 에스파냐 병사와 일부 현지인 동맹군으로 아스텍 제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석 달 뒤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함락되었고 황제 몬테수마와 그 계승자를 포함한 주민의 절반이 사망했다. 점령된 도시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전투에 참가한 스페인 군인의 증언이다. 
​“가옥과 논밭이 시체로 가득했다. 거리와 광장도 마찬가지였다. 인디오의 시체를 밟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드 게슈르테 저, 미래의 창) 2아즈텍 제국 일원에는 약 2500만 명의 원주민이 있었는데 1800만 명이 천연두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의 돼지치기 출신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짓밟힌 황금의 제국 잉카 역시 천연두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피사로의 정복 작업과 더불어 퍼지기 시작한 천연두는 최소한 잉카 제국 국민의 절반, 학자에 따라서는 90%에 이르는 인구를 쓰러뜨렸다. 미국 학자 윌리엄 맥닐이 설명한 바, 한 지역에서 특별히 영향력을 보이지 않던 질병이, 인구의 이동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다른 지역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현상, 즉 ‘맥닐의 법칙’이 가장 파괴적으로 적용된 예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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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에 의해 괴멸적 타격을 입고 엄청난 인구 손실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스페인의 폭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광산에서, 농장에서 짐승처럼 일하다가 맞아 죽거나 병들어 죽어갔다. 이 참상에 분개한 라스 카사스 등 일부 성직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권리를 존중할 것을 강력히 호소했다. 라스 카사스는 다음과 같이 분노했다. 




라스 카사스 



​“신께서 스페인을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인도에서 자행한 파괴 행위 때문이며, 스페인을 파괴하려는 하느님의 생각은 명백히 정당하고 그것은 40년이 지나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런데 라스 카사스와 그 동료들은 그 선의와는 별개로 또 하나의 세계사적 범죄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노예가 부족하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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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장에 백인 농장주들은 적극 호응했다. 안 그래도 천연두로 인해 원주민들 태반이 쓰러져 노동력이 아쉬운 판에 인디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흑인들을 데려온다면 인도주의를 주창하는 신부들의 성가신 잔소리를 해결함과 동시에 노동력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었다. 이후 아프리카에서는 대규모 노예 사냥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대서양을 오가는 배에는 ‘검은 화물’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일컫는 말)들이 그득 그득 실렸다. 수천만 명을 헤아리는 흑인들이 그렇게 생면부지의 신대륙으로 옮겨지게 된 이유 가운데에는 천연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