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과 재인산성이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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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0 22:34

명박산성과 재인산성이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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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표현의 자유,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우리 현대사는 그 기본을 쟁취하기 위한 역사이기도 했고,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기본’을 체화했다고 자부해 왔다. 언론의 자유야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는 불만마저 나오고, 그래서 국회의원이 ‘스피커’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도 그 위험성을 모르는 데까지 이르렀으며 평화적 시위로 정권을 바꿔 본 몇 안되는 나라이며, 정권 바뀐 뒤 매주 주말 깃발부대들이 광화문통을 메우고 문재앙 죽여라 떠들고 다니는 걸 보면 집회 시위의 자유도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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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8월 15일 이후 양상이 바뀌었다.  적어도 깃발 부대 (나는 태극기를 존중하기에 그 저질 시위꾼들에게 태극기 부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들에 대해서는 집회 시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 .
이 집회 시위의 자유의 제한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에 대해 욕설을 퍼붓는 열혈 정권 지지자들을 비판하되 나는 깃발부대의 시위와 집회 제한에 동의한다.  차벽을 치든 검문을 하든 그들의 집결과 시위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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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부대도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그들의 집회를 자유로이 할 권리가 있으나 그들이 집회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권리를 짓밟을 위험성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집회와 시위는 남들을 불편하게 하는 행위다. 하지만 그 ‘남들’ 역시 집회와 시위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킬 권리가 있으므로 그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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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집회와 시위가 ‘불편’을 넘어서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위협하고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을 퍼뜨리는 도가니가 된다면 해당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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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대구에서 코로나가 폭발할 때 우리는 ‘신천지 관련’ 코로나 환자들의 수치를 접했다. 이들 모두가 신천지 교도가 아니었다. 신천지 교도 중 감염자들과 접촉한 사람들의 합이다. 2월 18일 대구 신천지교회 첫 감염 사례인 31번째 환자가 나왔다. 그리고 2월 19일 31번 환자와 대구 신천지교회 예배 참여 신도 1천여명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됐고 2월 25일에는 신천지 교회 협조를 받아 신도 전체 코로나 환자에 대한 조사가 시행됐다. 그리고 2월 29일 하루 신규 확진자 909명의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왔다. (출처:대구신문 http://www.idaegu.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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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교회가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그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는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구 시내에서 신천지 교도들이 예배의 자유를 달라며 폐쇄된 신천지 예배당에 들어가겠다며 시위를 벌였다면 그들은 경찰 이전에 시민들에게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여론이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이 예배의 자유를 외치며 “순교하겠다.”고 설쳤다면 정말 순교(?)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신천지 교도가 보건소 직원에게 침을 뱉으며 저항하는 가운데 신천지 교주 이만희가 광화문 광장에 신천지 수만 명을 집결시켜 ‘중국에서 코로나를 방어하지 못한 정부가 우리 신천지를 희생양삼는다.’며 집회와 시위를 벌이려 했다면 신천지 교당은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때려부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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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신천지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그들이 다닥다닥 붙어 예배를 보고 침을 튀기며 코로나를 전파하던 때에는 코로나에 대한 이해가 적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의 진원지가 됐고 그들은 언론을 비롯한 여론의 융단 폭격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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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렇게 난리를 겪고도, 코로나의 위험성을 잘 알고도, 어떻게 하면 병이 퍼지는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으면서도 교회에 모여들어 집단 생활을 하고, 지방에서 올라와 찜질방에서 자고, 예배한답시고 시위한답시고 모여들어 악을 쓰고 노래 부르고 침을 튀기는 집단이 있었다. 그래서 한 집단에서 확진자가 천 명이 넘는 입이 딱 벌어지는 상황을 빚어냈다. 바로 사랑제일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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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천 수백 명이 자기 집에서, 동네에서, 찜질방에서, 식당에서 활개치고 다녔다. 그들 뿐 아니라 깃발부대에 참석하는 자들은 당국의 방역 지침을 무시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었고, 오로지 ‘문재앙’에 대한 증오만 그득할 뿐, 그 모임이 감염병의 진원지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관심도, 의문도, 문제의식도 없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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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 집회는 그 절정이었다. 그들을 막던 경찰관들이 감염됐고 그들이 깃발 들고 우루루 들어와 커피 마신 까페, 비 피하던 지하도 곁에 있던 시민들이 덩달아 코로나에 걸렸다.  사랑제일교회 천 명 외에도 대관절 몇 명이나 될지 모르는 ‘코로나 불감증’들이 몰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 동네에 돌아가 누구를 감염시켰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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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회를 주도한 전광훈이 걸리고 주옥순이 감염되고 그들과 접촉한 신혜식이 입원하면서도. 왕년의 코미디언 신소걸 목사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한다.  그러면서 또 집회 시위를 하겠다고 우긴다. 방역 지침을 지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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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은 이미 8.15 때 집회 참가 인원을 천 명으로 하겠다고 했으나 그를 통제하지 못했다. 집회 시위의 성격상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 독감 이후 최대 최악이라고 보이는 판데믹이 유행하는 상황에서라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집회라면 외부적으로도 통제돼야 한다.  하다못해 그들은 8.15 집회 때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반성의 빛도 보인 적이 없다.


 차벽을 친 자체로 명박산성과 재인산성을 비교하는 것도 성급하다. 위에서 얘기했지만 집회 시위의 자유가 제한된 것은 일단 유쾌한 일이 아니다. 정당화할 수 있을지언정 정당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명박산성과 재인산성은 다르다. 지키고자 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반정부 시위를 막는 공통점을 넘어 권력을 지키려는 목적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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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주말 광화문에 나가는 일을 피했다.  나가서 눈살 찌푸리기 싫었고 귀도 아팠기 때문이다. 약속이나 일정이 있어 불가피하게 나가면 지하철의 깃발부대를 독살스럽게 쳐다보았고 욕설을 뇌까리며 광화문을 오갔다. 그러나 감수해야 했고 그들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았고, 그들이 부당하게 집회 시위를 금지돼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민주주의니까.  적어도 ‘불편함’은 당연히 감수돼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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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내 가족과 내 생명을 위협하고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는 감염병의 진원지가 된다면, 그리고 그럴 혐의를 그들이 스스로 입증했다면 이 판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무리한 집착은 망나니들에게 막걸리를 먹이고 칼을 쥐어주는 행위와 진배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망나니들이 누구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두를지는 그들도 모르고 당하는 사람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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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춤출 자유는 있다. 그러나 술취한 망나니의 칼춤을 ‘춤의 자유’로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