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시작 - 누구의 입도 막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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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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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머물렀던 마지막 해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동아리 연합회에서는 일찌감치 추방됐던 통일교 대학생 동아리인 원리 연구회에서 실로 몇 년 만에 공개집회를 여는데 자그마치 문선명 목사의 부인인 한학자씨까지 불러들여 강연회를 연다는 소문이 귀에 들렸습니다. 따로이 제 귀에 들렸다기보다는 자연스레 알게 된 겁니다. 며칠 전부터 살기등등한 기독교 서클들의 대자보가 연일 학교에 나붙었으니까요. 학생회관 3층은 기독교 동아리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잡다한 동아리 이름들이 대자보에 내걸린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UBF,JOY, CCC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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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학생들도 집회를 강행한다고 했고 기독교 동아리들은 십자군의 기세로 그 집회를 저지한다고 했습니다. 딱히 통일교에 관심도 없었고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되 학관 3층의 ‘병동’ (그렇게 불렀습니다) 사람들의 신앙과는 별반 공통점이 적었던지라 굳이 현장에 나갈 이유는 없었지만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과감하게 책을 덮고 도서관을 박차고 경영관으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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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경영관 대강당 앞은 뜨겁게 달아오른 학생들로 그득히 메워져 있었습니다. 강당 안에서 행사를 준비 중이던 통일교측 학생들은 감히 나올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형세만 살피고 있었지요. 눈을 들어 포위 병력(?)들을 살펴 봤습니다. 학생회관에서 낯익은 ‘병동’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통일교가 극우적인 행태를 보여 왔다고 규정하고 그들의 학내 시위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운동권 학생들도 끼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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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저지와 필사엄호의 맞대결이었지만 처음에는 그래도 분위기가 괜찮았습니다. 매우 ‘대학생다운’ 토론들이 벌어졌지요. 양측 학생들이 돌아가며 핸드마이크를 잡는 룰도 대체로 지켜졌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초반에는 말이죠. 격렬하지만 차분한 논전이 벌어졌습니다. 통일교의 반역사적, 그리고 친 독재정권적 행태를 공박하는 의견도 있었고 통일교측의 반론도 정중하게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성적인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피가름의 교리'를 주장하는 섹스교에 불과하며 '혼음을 즐기고 문선명 개인에 목숨을 거는 이단'이라는 발언이 등장하고 거기에 기독교 학생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쏟아지면서 분위기는 펄펄 끓는 주전자로 변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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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통일교 학생들도 흥분했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이 우리가 학교에 집회 신고를 내고 허락을 맡아 행하는 강연을 막을 권리가 어디 있느냐고 따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폭력적으로 저지되면서 최소한의 발언 기회는 보장하던 '똘레랑스'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핸드 마이크를 잡으려는 통일교 학생들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되었고 신심깊은 기독교 학생들의 입에서는 성스럽기보다는 상스러운 용어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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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원리연구회 학생들이 문을 터 보려는 마지막 시도로 두터운 사람의 벽을 밀어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모한 시도였지요. 머릿 수에서 십자군(?)들이 훨씬 더 많았을 뿐더러 통일교에 별로 감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까지 끼어드는 빌미를 제공한 겁니다. 몸싸움을 넘어선 난투극이 벌어지기 직전, 아까부터 발언기회를 달라고 절규하던 원리연구회 간부가 몸을 날리다시피 양측의 사이에 서서 두 팔을 벌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편 학생들을 향해 외쳤지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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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울대를 터질 듯이 곧추세우고서 그는 울부짖다시피 싸움을 말렸습니다. 그 외침에 원리연구회의 꽹과리 소리는 잦아들었고, 뒤이어 나선 양측 지도부의 만류로 강당 앞 좁은 길에서 수백 명이 엉켜 폭력을 나누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습니다. 결국 강당 안에 머물러 있던 원리연구회 학생들은 철수하기로 했고 기독교인들은 씩씩거리면서 길을 틔웠습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철철 눈물을 흘리면서 씩씩거리는 쪽을 보고 울먹였습니다.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나요.. 여러분보고 들어오라고 한 적 없어요. 관심 있는 사람만 와서 보라는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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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참 오래 머리에 남았습니다. 당시 상황을 정리한 것은 총학생회 간부였습니다. 그는 복음동아리들의 열광적인 박수 속에 (그 사람들이 총학생회 간부에게 그렇게 열렬히 박수를 보낸 건 아마도 처음이었을 듯한데) 통일교 집회가 ‘저지’되었음을 선언했지요. ‘마지막 승리는 우리의 차지’를 부르짖는 만화영화 주인공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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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타박을 당해도 화내지 않고 웃으며 주님의 은혜를 되뇌던 UBF 학생들의 온화한 얼굴이 얼마나 그악스럽게 변하는지를 그 집회에서 처음 봤거니와, 학교 내 복음동아리 외에도 학교 근처 교회 청년들까지 출동(?)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의 대학’이라는 허울 좋은 그들의 예루살렘을 지키는 십자군이 돼 있었고 총학생회는 그 적대감에 편승해 가뜩이나 꼴 보기 싫었던 ‘반동의 상징’ 통일교 집회를 저지를 ‘선언’하면서 모처럼 (아니 거의 처음일) 복음동아리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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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가 80년대 내내 극우적 이데올로기를 대학가에 전파하고 그 막대한 자금력으로 총학생회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켰으며 군부독재 정권의 ‘주구’로 기능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외부의 자금과 후원을 받아 학생들의 자치 활동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규탄할 만 했고 저지의 정당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가 불법 집단이 아닌 이상, 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포교 활동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는 종교인 이상 그들이 집회 신고를 내고 펼치는 집회를 '원천봉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통일교 학생들의 자유와 권리를 폭력적으로 침해하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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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의 주장이라도 그에 반박하고 조롱하고 정히 안되면 귀를 막을지언정 완력으로 저지하고 협박하여 틀어막고 자신이 아닌 남도 듣지 못하도록 봉쇄해 버리는 것은 어떤 명목으로든 정의롭지 못합니다. 그 명목이 아무리 정의로워도 정의가 아니며, 외려 자신이 숭상하는 정의를 타락시켜 바닥에 나뒹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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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돼 있던 서민 교수의 강연이 갑자기, 별 이유도 없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서민 교수의 강연을 자신이 나서 저지했다고 자랑스럽게 뇌까리는 ‘대깨문’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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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민 교수나 그분을 비롯하여 최근의 베스트셀러 공저자인 다섯 분과 많은 부분에서 의견을 달리하고 ‘너무 나간다’는 우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은 뒤에 다시 물이 차고 꼭대기에 천지못이 생긴다 해도 강연을 저지했다고 자랑하는 ‘대깨문’은 정의로울 수도, 민주주의에 유익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대깨문도 아닙니다. 대깨문이라면 그 문은 문(文)이 아닐 겁니다. 그저 대가리가 깨진 문디자슥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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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집회 당시 집회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성토 집회를 열고 학교를 방문한 통일교 인사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고, 그렇게 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심에 불타는 기독교 학생들과 그에 편승한 운동권 학생들은 그 정도를 지나쳐 민주주의의 기본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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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깨문’을 자처하시는 분들이 ‘흑서 5남매’를 미워하시는 심경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대깨문의 존재 이유가 문재인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일념에 있다고 한다면 (뭐 그조차 부인하는 분들은 그냥..... 그렇게 가시고) 그들의 입을 막으며 희열을 느끼는 파쇼적 변태성은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남의 입을 막지 않는 일입니다. 싫어도 듣는 일입니다. 참 쉬워 보이지만 어렵고, 간단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일이죠. 일부 ‘대깨문’의 일탈이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