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 인간 사이에서 - 인류의 무서운 동반자 천연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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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5 14:18

미국 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명저 <총,균,쇠>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질병은 인간을 죽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인 동시에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랜 기간 인류를 죽게 만들었고, 또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사를 극적으로 변화시킨 질병, 특히 전염병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보자. 19세기의 지구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든 콜레라나 유럽의 중세 시대를 끝장낸 페스트도 역사를 뒤바꾼 질병 순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겠지만 ‘가장 오랜 기간’이라는 전제가 달리면 아무래도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 천연두(天然痘, smallpox)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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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다이아몬드 교수로 돌아가서, 그는 인류의 야생동물 가축화가 가져온 질병 문제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치명적인 전염병들은 대개 소나 돼지 등의 가축에서 서식하던 병균들의 돌연변이종에 의해 생겨났는데 홍역, 결핵, 천연두 등은 소에서 유래했고, 백일해나 인플루엔자는 돼지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이에 따른다면 인류는 4만년 쯤 전부터 광견병을 경험했을 수 있고 (개의 가축화가 4만 년 전 부터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으므로) 대략 8천년 전 부터는 천연두와 홍역 등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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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는 대단히 파괴적인 전염병이었다. 역사적으로 30% 정도 (악성의 경우는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함)를 기록한 치사율 또한 높은 편이거니와 병을 앓은 후유증인 곰보 자국은 평생 신체에 남았다. 또 전파력이 대단히 높아서 일단 발병했다 하면 일대가 괴멸적인 타격을 입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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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천연두 발병 기록은 까마득한 과거로 거슬러 오른다. 세계 최초의 철기 문명을 자랑했던 제국 히타이트는 오리엔트 지역을 넘보는 이집트와 오랜 세월 다툼을 벌였다. 그들의 전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카데시 전투(기원전 1286년)다.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무와탈리 2세의 수만 군대가 정면으로 격돌한 전투였는데 양쪽의 기록이 모두 남아 있어 세계사에 기록된 최초의 대회전(大會戰)으로 곧잘 입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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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그로부터 한참 전부터 앙숙이었다. 기원전 1350년 히타이트의 전성기를 이룬 왕 수피룰리우마스 1세는 이집트의 아멘호텝 3세 군대와 전쟁을 벌였는데 이때 히타이트에 잡혀온 이집트 포로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퍼졌다. 포로들의 병은 이내 히타이트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용맹한 수피룰리마우스 왕과 그 왕자를 비롯한 수많은 히타이트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학자들은 이 무서운 전염병이 천연두였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천연두는 이집트 미라에서도 마수(魔手)의 흔적을 역력히 남기고 있다. 동생에게 파라오 자리를 빼앗겼던 비운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 얼굴에는 천연두를 앓았음을 알려주는 곰보 자국이 선연하다. 천연두의 세계사 입장(?)은 그렇게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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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천연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으로 전파된다. 옛 사람들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고 증상에 대한 과장도 많아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인도의 산스크리트 어 의학서를 보면 B.C 1500년 경 천연두가 유행했고 중국의 경우 주나라 시대인 B.C 1122년 천연두로 추정되는 발병 기록이 나타난다고 한다. 인도에서 역병을 무찌르는 존재로 시탈라 여신이 등장했고 중국에서도 두진낭랑(痘疹娘娘))에 대한 민간신앙이 생겨날 만큼 가공할 위력의 전염병이었다. 중국의 전국시대 말이나 한나라 시대에도 천연두 대유행이 발생했고 4세기 중국 진(晋)나라의 의사 갈홍(葛洪)의 저서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는 천연두의 증상이 정확하게 묘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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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창(痘瘡), 창진(瘡疹)·반진(斑疹) 등 여러 이름으로 기록되는 천연두는 중국과 교류가 잦았던 우리나라에도 이른 시기에 들어왔고 수많은 희생자를 냈고 일본도 그랬다. 서기 552년 백제 성왕은 노리사치계를 일본에 보내 백제를 전파했는데 일본의 귀족 사회는 불교에 열광했고 “이처럼 미묘한 법설을 들은 적이 없다.”고 기뻐했으나 사절단은 불법만이 아니라 천연두까지 함께 전파해 주었다. 이후 일본은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되었고, 이후 당시 한 세대의 평균 연령인 30년마다 유행처럼 천연두가 재발되면서 무려 13세기까지 타격을 입었다”(<봄철의 주요 전염병>, 약학정보원, 최혁재)고 할 만큼 천연두의 습격을 뻔질나게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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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이 국력을 기울인 백제 지원에 나섰고 백강 전투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참패하고 물러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때 한반도에 나왔던 일본군들은 천연두와 함께 돌아왔고 일본 인구의 1/3이 죽었다고 할 만큼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 유행은 수십 년마다 반복돼 737년에는 일본 최고의 귀족 가문이라 할 후지와라씨의 지위를 굳건히 했던 권력자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不比等)의 네 아들이 천연두에 몰살당하기도 했다. 병마 앞에서는 귀족과 평민이 따로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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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반대쪽 유럽에는 상대적으로 천연두의 방문이 늦은 듯하다. 의학의 아버지라 할 히포크라테스의 기록에도 천연두로 추정되는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2세기 후반, 로마 제국을 휩쓴 ‘안토니우스 역병’을 유럽 최초의 천연두 대유행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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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로마 제국은 5현제(賢帝) 시대를 거치며 영국에서 메소포타미아 강, 라인 강에서 오늘날의 모로코 지역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룬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그런데 중동의 파르티아 원정에 나섰다 돌아온 로마 군단병 사이에서 ‘안토니우스 역병’이 퍼졌다. 역병의 이름은 당시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리스 의사 갈렌에 따르면 “환자 몸 전체에 발진이 일어났고 몸 전체를 덮는 발진은 보통 검은 색이지만 궤양은 없었으며, 생존한 사람들은 농양 물집의 혈액 잔재물과 물집을 지닌다.”고 했다. 천연두 증상과 매우 흡사하다.

   영화 글라디에이터 중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글라디에이터>와 <로마 제국의 멸망> 등 사극 영화 속에서 로마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드는 분기점으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사망을 드는 경우가 많다. 쉬지 않고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명상록>을 저술한 ‘철인(哲人)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안토니우스 역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황제 뿐이 아니었다. 매일 수천 명의 로마 제국 국민이 쓰러졌고 대략 5백만 명의 로마제국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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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병이 파르티아 원정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되짚어 보자. 파르티아 제국은 페르시아와 중동에 걸친 나라였고 중국과 로마 제국 사이를 잇는 교통로 비단길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이 안토니우스 역병으로 고통받던 그 시기, 한나라에서도 대단한 역병이 창궐했던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즉 동서양을 잇는 비단길을 따라 전염병이 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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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한 것이 서기 180년이었고 전염병의 습격 등 잇단 자연 재해로 피폐해진 백성들에게 “蒼天已死 當立黃天 ” 즉 “한나라를 상징하는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고 바야흐로 누런 하늘이 서리라.”고 부르짖은 장각이 황건의 난을 일으킨 해가 서기 184년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연의>의 시작 장면이다. 천연두(로 추정되는 전염병)은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던 한나라와 로마를 동시에 뒤흔들었던 셈이다. 로마제국은 다시는 전성기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고, 오늘날 중국 민족을 일컫는 한족(漢族)의 유래일 만큼 중국사에서 의미가 큰 한나라의 이름은 기어코 끊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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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역사를 통해 약 5억 명의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추정되는 천연두는 끊임없이 재발하면서 인류를 괴롭혔다. 또한 인류 역시 천연두의 정체에 대해 감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고열과 발진 등 증상이 비슷한 홍역과 천연두를 명확히 구분한 것은 9세기 아랍 의사 라제스 (본명은 아부 바크르 모하마드 이븐 자카리야 엘 라지)다. 총 237권의 저서를 남긴 ‘이슬람 의학의 아버지’이자 커피(커피)의 존재를 최초로 문헌으로 남겼던 그는 <천연두와 홍역에 관한 논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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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통증은 천연두의 특징적인 증상이다. 천연두에 걸리면 열이 나고 잇몸이 붉게 변하기도 한다. 종기에 고름이 맺히기 시작하면 우선 두 눈을 먼저 치료하고 코, 귀 순으로 치료해야 한다. 작고 흰 고름 종기들이 무더기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종기에 고름이 없어지고 딱딱해지는데 이는 위험한 시기에 진입한 것이다. 발진이 생긴 후에 이러한 증상이 계속된다면 이미 생사의 기로에 선 상태이며 녹색, 또는 검은색 고름이 맺힌 종기가 생겨난 후 열이 계속 오르고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면 최악의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 (뉴스로드 2019년 1월 4일 ‘동서고금 의술 이야기,아랍의학의 요체 중) 그러나 천연두가 빚어내는 ‘최악의 상황’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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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