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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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06 00:19


* 사람을 늘 놀라게 만드는 소설 아마존, 정유정

제가 정유정 작가를 만난 것은 2003년 모 인터넷 사이트였습니다. 꽤 큰 논쟁에서 정 작가와 저는 반대편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 에너지 넘치는 작가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한건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도 그땐 꽤나 비장파였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을때 저한테 쿨하게(?) 그러더군요. ‘그땐 니가 옳았어’라고. ‘그런데 왜?’라고 되물었을때 ‘그냥 몰리는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없었고, 다시 비슷한 일이 생겨도 그런 선택을 할 것 같다’고 답하더군요. 그때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주장한 것이 꼭 옳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거리의 악사라고 생각하는 저는 게시판에 여러 넋두리를 늘어놓으면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버텨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썼던 글 중 하나가 ‘나는 거리의 악사다’라는 글이었는데, 당시 세 편의 소설을 냈지만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던 정 작가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게 했던 글이었나 봅니다. 저 역시 정유정 작가의 글을 보면서 그런 것을 느꼈었구요.

이 프롤로그를 쓰기 위해 당시 주고 받았던 메일을 보니 이런 표현이 있네요.

"거리의 악사를 수차례에 걸쳐 읽었지요. 그럴때마다 혼자 훌쩍이곤 했습니다. 감수성, 독기와 오기, 자존심, 하다못해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까지 저랑 비슷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정 작가는 ‘러닝 맨과 거리의 악사’라는 멋진 글을 게시판에 남겨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지금도 에너지가 필요할땐 가끔 꺼내 읽는 글입니다.

“나는 인간 지승호를 모른다. 그러나 거리의 악사라는 글은 그의 책을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순수한 글쟁이 지승호의 팬이 되었다. 글쟁이로서 지승호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그의 글에서 현실을 인정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몸짓과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사람으로서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다르나 같은 도구를 이용해 길을 가는, 그리고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병아리 글쟁이로서, 그의 그런 미덕은 정말이지 탐나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글은 정유정 작가가 스스로에 대해 쓴 글이 아니었나 싶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그때 서로 ‘이걸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빨리 그만둬야 하는건 아닐까?’라는 고민을 공유하면서 가끔 메일을 주고 받았었는데, 그런 정 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28>의 첫 문장 ‘베링 해가 훅, 사라’진 것처럼.

몇 년 후 세계일보 청소년 문학상 수상자 정유정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단번에 그 사람일거라는 짐작을 했지요. 글에 대한 그 정도 열정과 에너지였다면.

그리고 축하한다는 메일을 보내고 이런 답을 받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한 3년 세상과 인연을 모두 끊어버리고 동굴에서 마늘하고 쑥 묵고 도 닦았어요. 이번에도 안 되면 혀 물고 죽는거다, 하면서.... 에혀...... 그 고통스런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슴까. 꺼이꺼이”

그 심정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잠시 연락이 되던 그가 다시 훅 사라졌습니다. 다음 작품을 위해 칩거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계문학상 수상자로 매스컴을 타더군요. 알고보니 청소년문학상을 받고 나니 청소년 소설 원고 청탁만 들어와서 거기 자신을 한정 짓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유폐시킨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 작가로 스스로 한정지어지기 싫어서 모험을 택한 방식이 정유정답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몇년전 저에 대한 이런 댓글을 봤습니다. "부르는대로 받아적으면서 본인이름 붙이자면 상당히 쪽팔릴텐데. 15년을 하는거보니 낯이 두껍군"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15년 넘게(지금은 18년째네요) 해 온 일에 대한 평가를 여전히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인터뷰어로서 이런 저런 평가들을 극복해오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온 삶인데, 이런 글을 볼때마다 무릎이 꺽이는 기분입니다. 
 
정유정 작가도 그런 평가들을 극복하면서 최고의 소설가, 이야기꾼의 자리에 올랐을 것입니다. 공모전을 11번 탈락하면서 11전 12기를 하는 동안 정유정 작가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장르는 다르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런 것을 노력과 실력으로 극복한 정작가가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면서 평생 응원할 수 있는 동료인 정유정 작가가 저에겐 너무나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유정 작가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스티븐 킹처럼 정말 나이 많이 들어서까지 끊임없이 쓰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커. 불안하고, 무서운 것이 그거야, 어느날 갑자기 세상에 할 이야기가 없어질까봐, 나는 그때는 어떻게 되는거지, 별 생각이 다 들어. 그러면 나 자살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도 들고. 나는 잡초처럼 생존 본능이 강한 사람이라서 힘든 일이 있다고 ‘나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소설을 못쓰는 상황이 오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 할 이야기가 없어서 ‘나 이제 소설 그만써야 할 것 같다’는 상황이 오면 진지하게 나는 죽을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정유정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는 태도를 보면 무당이 굿을 준비하는 자세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정유정 작가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무당이라는 것은 이승하고 저승을 매개하는 영매이기도 하고, 작가는 독자와 세상 사이에서 어떤 영매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굿이라는 것이 귀신이라는 존재와 싸우는 느낌도 있고, 엄청난 프로페셔날이지만, 굿할때마다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하고, 각별한 긴장을 해야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작두에 발이 베일 수도 있구요. 늘 새로운 굿을 준비하듯 철저하게 임하는 정유정 작가의 태도를 보면서 프로로서의 태도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데뷔의 순간>이라는 책을 통해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진짜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불확실성과 마주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할 줄 아는 다른 게 없으니 ‘선택의 여지’나 그런 게 없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정유정 작가가 오버랩이 되더군요. 인터뷰어로서 정유정 작가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행운이라고 할 수 밖에 없겠지요. 팬으로서 정유정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됩니다. 정유정 작가라면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이야기를 가지고 다시금 저를 깜짝 놀라게 하겠지요.

어느 소설가는 ‘비행기를 탈 때 읽기 시작해서 내릴때까지 놓을 수 없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정유정 작가가 그런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정유정 작가의 건투를 빕니다.

2018년 2월 24일 지승호 씀.  

   
내이름은방량 04/06 05:37
참 모질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 .작가님 힘내세요
1 댓글